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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노, 자전거 부품업체의 혁신, 기업의 생존과 성장

by 구름1 2012. 10. 10.

일본에 이런 회사가 있다. 올해 예상 순이익은 275억엔(약 3900억원). 작년에 비해 39% 급증한 규모로 사상 최대치다. 첨단 업종? 아니다. 쇠를 두드려 부품을 만드는 전통 제조업이다.

 

 

시마노 자전거 부품시마노 자전거 부품, 드레일러, 크랭크, 디스크, 체인, 브레이크, 페달 등 

 

엔고(高)에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내로라하는 일본 대표 기업들이 모두 곡소리를 내고 있는 요즘, 이 회사만은 무풍지대다.

 

1921년 오사카에서 동네 철공소로 출발해 한 해 3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5500명의 직원을 거느린 세계 최대 자전거부품업체, 시마노 얘기다. 시마노의 별칭은 ‘자전거업계의 인텔’이다. 좀 괜찮다 싶은 자전거를 분해하면 부품은 어김없이 시마노제다. ‘시마노가 없으면 세계 자전거의 8할이 멈춰서게 된다’는 얘기,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 회사의 성공스토리는 끊임없는 ‘혁신적 사고’에 기반한다. 그리고 그런 별난 아이디어를 수용하고, 오히려 장려하는 기업문화가 성공의 토양이다.

 

◆역발상 장려 문화

1981년 창업주의 막내 아들이자 해외영업을 총괄하고 있던 시마노 요시조가 미국 서해안에서 일본 본사로 전화를 걸었다. “샌프란시스코 북쪽에 있는 산에 갔더니 어떤 녀석들이 자전거를 개조해 타고 내려가며 놀고 있던데, 혹시 우리가 만들 수 없을까.”

산에서 타는 자전거? 당시 상식과는 역행하는 발상이었다. 엔지니어들은 마뜩잖았다. 그래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온 이상 주요 부서가 모두 모여 머리를 맞댔다. 그게 시마노의 전통이었다.

마라톤 회의가 끝난 뒤 결론은 ‘해 보자’는 쪽으로 모아졌다. 지금은 보편화된 산악자전거인 MTB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시마노는 길게 호흡한다. 직원들을 섣불리 닦달하지 않는다.

에피소드 한 토막. 낚시용품 사업에 뛰어들기 위해 고심하던 1970년대. 신사업개발팀 전원이 “낚시하러 간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모두 사라졌다. 도중에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본사가 어렵사리 수소문해 한 달반 만에 찾아냈다. 그들은 여전히 배를 타고 있었다. 낚시꾼의 마음을 아직도 모르겠다면서…. 지금 이 회사의 매출 20%는 낚시용품에서 올리고 있다.

스포츠 저널리스트인 야마구치 가즈유키는 그의 책 시마노 이야기에서 “디자이너가 미국에 가서 3개월이나 구체적인 성과 없이 소매점만 둘러보고 있어도 한마디도 하지 않는 회사가 바로 시마노”라고 했다.

 

◆기업 생존·성장, 혁신과 직결

 

시마노는 혁신이 기업의 생존과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혁신은 결코 말처럼 쉽지않다. 경쟁을 이겨나가는 필수 방정식이지만 이를 제대로 푸는 기업은 그다지 많지 않다. 자기기만적인 변화를 혁신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소니는 애플 아이팟보다도 2년이나 앞서서 비슷한 성능의 MP3플레이어를 내놨지만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음원회사인 소니뮤직까지 가세했지만 별무신통이 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 시장은 재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뒤에 등장한 아이팟은 전자산업 패러다임을 통째로 바꿔놓을 정도로 강력한 태풍을 몰고 왔다. 그 바람에 소니 노키아 HP 림 같은 맹장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만약 어느날 반도체 없이 PC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면 어떻게 될까. 전선 없이 무선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기계장치가 개발되는 날, 전 세계 전선업체와 목재·건설업체들은 어찌되는걸까. 해당 기업으로서 정말 끔찍한 일이겠지만 그런 날이 빠른 시일내에 오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혁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일어나고, 준비되고 있다.

 

◆혁신 가능성은 위기속에 내재

 

미국 최장수 비즈니스 잡지의 명성을 갖고 있는 포천은 1930년 미국 경제가 최악으로 치닫던 대공항 때 탄생했다. 뉴욕타임스보다 20배나 비싼 1달러를 책값으로 받았지만 다양한 통계와 일러스트 등 고급화를 꾀하면서 성공 가도를 달렸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겠다는 욕구가 팽배하던 시기에 고급 경제정보에 굶주린 독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스턴트 커피의 대중화도 대공황 때 이뤄졌다. 당초 이 기술은 일본인 과학자 사토리 가토가 1900년대 초에 개발했지만 당시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네스카페가 대공황 때 경제적으로 어려운 미국인들이 값싸게 커피를 마시는 방법으로 활용하면서 대박을 쳤다.

이처럼 혁신의 가능성은 늘 위기 속에 내재돼 있다. 다만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거나 늦게 발견할 뿐이다. 그 조그만 차이가 나중에 흥망이 달린 큰 승부를 결정한다는 게 기업의 역사다.

강한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호황이든 불황이든 스스로 변하지 않고 안주하는 기업들의 수명은 짧을 수밖에 없다”며 “지금처럼 시장이 좋지 않을 때는 많은 돈을 쓰지 않고서도 혁신적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만큼 주변의 변화를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종서/김주완/도쿄=안재석 기자 cosm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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