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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관심분야

공산품의 라이벌 브랜드전

by 구름1 2013. 2. 26.
GEEK
라이벌 브랜드 열전

역사적인 브랜드는 홀로 존재할 수 없다. 라이벌이 있어야 1등도 있다. 라이벌 브랜드들이 벌인 전쟁의 유구한 역사.

1리바이스와 리의 소리없는 전쟁



1. 리 101 블루 필드 by 스컬프 34만 9천원.
2. 리바이스 1947 501 by 스컬프 34만 9천원.
리바이스와 리는 사이 좋은 라이벌이다. 주 종목도, 창립 시기도 비슷하지만 100년 넘게 별 싸움 없이 잘 지내고 있다. 리바이스는 1873년 레비 스트라우스란 남자가 노동자들의 작업복을 만들며 시작됐고, 리 역시 1889년 헨리 데이비드 리란 남자가 노동자들의 작업 바지와 재킷을 만들며 시작됐다.

둘 다 골드 러시가 뜨겁던 19세기 미국 서부에서 탄생한 청바지란 얘기다. 둘 사이의 관계가 원만했던 건 아마도 가격 차이 때문일 것이다.

당시 리 청바지는 리바이스의 3분의 1밖에 하지 않는다. 이러면 타깃 시장이 절로 달라진다. 핏도 사뭇 다르다. 리는 전형적인 아메리칸 캐주얼 클래식에 가깝고, 리바이스는 굴곡을 넣거나 바지의 품을 조절한 디자인의 바지를 종종 내놓는다.

제임스 딘, 말론 브랜도 등 스타 마케팅을 활용해 1960년대 반항의 상징이 된 것도 리바이스다. 반면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어패럴 회사 VF 코퍼레이션이 소유한 리는 중산층의 무난한 청바지로 무난하게 장사하고 있다.

뚱뚱한 아줌마, 아저씨 청바지란 이미지가 최대 약점이긴 하지만 1997년 젊은 층을 겨냥해 내놓은 덩가리스(Dungarees) 라인이 나쁘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인기 많은 재주꾼과 착실한 모범생의 관계랄까. 취향 따라 골라 입을 문제다.


제임스 딘을 사이에 둔 리바이스와 리의 전투?

영화 [에덴의 동쪽]과 [이유 없는 반항] 장면을 빌린 리바이스의 광고는 정말 강렬했다. 하지만 그 광고 속에서 제임스 딘은 리바이스가 아닌 리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평소 리를 즐겨 입던 터라 영화에서도 리를 입었던 것이다.

젊음과 저항, 그리고 반항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고 있던 리바이스가 제임스 딘 재단과 영화사 워너브라더스를 설득해 영화의 장면을 가져왔고, 그 치밀한 전략 속에 리바이스는 곧 제임스 딘이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참 얄궂은 사정이다.

2칼스버그와 하이네켄의 녹색 병 전쟁

면세점 화장품 매장에 가서 “갈색 병 주세요”라고 말하면, 당연히 당신이 원하는 그 갈색 병이 손에 쥐어질 것이다. 그러나 마트의 주류 판매대에 가서 “녹색 병 주세요”라고 말한다면? 판매원은 두 녹색 병을 두고 한참을 고민하게 될 거다.

칼스버그와 하이네켄 말이다. 두 맥주는 각각 덴마크와 네덜란드의 자존심이며, 100년 이상 맥주계의 1인자를 두고 투쟁해온 경쟁 관계다.

칼스버그는 1847년 덴마크의 제이콥 크리스찬 제이콥슨이 만들었고, 하이네켄은 1864년 네덜란드인 제라드 아드리안 하이네켄이 만들었다.

하이네켄 역시 칼스버그가 발명해 전 유럽의 맥주 산업을 뒤바꿔놓은 하면발효 방식을 채택해서 맥주를 만들었으나 왠지 성에 차지 않았다. 그래서 하이네켄은 1886년 그들만의 효모인 ‘하이네켄 에이-이스트’를 개발해 특유의 쌉쌀한 맛을 완성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칼스버그와 하이네켄은 유럽 맥주 시장을 양분하는 역사적 라이벌로 성장해왔다. 영국 맥주 산업 조사 기관에 따르면 2009년 하이네켄은 모두 11억 리터를 팔았고, 칼스버그는 8억 리터를 팔았다. 당연히 1위와 2위 자리다.

3코카콜라와 펩시의 톡 쏘는 전쟁

사실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코카콜라는 탄산수를 대중 음료로 우뚝 세운 주역이었고, 펩시는 20년이나 늦게 출발한 후발 주자였다. 게다가 코카콜라는 키스, 티나 터너, 엘비스 프레슬리, 마이클 잭슨 등 빅 스타를 과감하게 기용하며 대대적으로 광고를 때렸다.

“영화든, 드라마든 코카콜라 상표 없이 야외 촬영하기는 힘들다”는 말이 나돌 지경이었다. 게다가 펩시는 망했다 일어나길 수차례 거듭했다. 특히 1920년대에는 폭등한 설탕값에 버티지 못하고 코카콜라에 인수를 제안하기까지 했다.

코카콜라는 매몰차게 거절했다. 하지만 펩시에도 비장의 한 수가 있었다. 자본주의의 보증수표, 바로 가격 말이다. 1939년 펩시는 코카콜라보다 두 배나 큰 제품을 같은 가격에 팔기 시작했다. 박리다매 전법이었다. 독보적인 1인자였던 코카콜라도 반격에 나섰고, 이때부터 이들의 ‘콜라 전쟁(Cola War)’이 시작됐다.

소송이 소송을 이었고, 노골적으로 서로를 조롱하는 광고가 방송을 탔다. 1985년 코카콜라가 ‘뉴 코크’라며 맛을 약간 변용한 제품을 출시해 소비자들의 원성을 사자 펩시는 환호성을 외쳤다. 아직도 이 싸움은 진행 중이다.

그리고 여전히 1위는 코카, 2위가 펩시다. 만년 2인자도, 만년 2인자에 시달리는 1인자도 참 고달픈 일이다.

코크도 펩시도 시작은 약방!
아틀란타의 약사 존 스티스 팸버턴은 1886년 코카 열매, 설탕, 카페인 등을 섞어 코카콜라를 만들었다. 미국에서 탄산수가 발명된 게 1767년이니 그다지 새로운 뉴스도 아니었다. 하지만 팸버턴이 소다수를 내놓은 그해 알코올 금지법이 발효됐고 팸버턴의 소다수는 불티나게 팔렸다.

펩시 역시 약사가 만들었다. 1894년 노스캐롤라이나의 약사 칼레브 데이비스 브레드햄은 위액의 주요 성분인 펩신이 다량 함유된 탄산수를 내놨다. 소화가 잘된다는 게 코카콜라와의 차별점이었다.

4메르세데스 벤츠와 BMW의 전쟁

1. MERCEDES BENZ THE NEW G CLASS.
2. BMW NEW 7 SERIES.
벤츠는 1894년 역사상 첫 번째 상용차 벨로를 출시한 이후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의 최강자로 군림했다. 경쟁자는 미국이 아니라 독일에서 나타났다. 제1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패전으로 끝나자,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독일은 더 이상 항공기 엔진를 포함해 무기를 제조할 수 없게 됐다.

항공기 엔진 회사를 운영하던 구스타프 오토, 칼 라크, 마츠 프리츠는 대신 BMW(바이에른 모터 제작 회사)를 설립하고 모터사이클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1926년부터 자동차 제조에 뛰어들었다.

BMW의 목표는 언제나 1등 벤츠를 따라잡는 것이었다. “벤츠보다 작은 엔진으로 아우토반에서 벤츠를 따라잡자!”라는 모토 아래 BMW는 보다 작고 스포티한 자동차를 만들며 벤츠와 경쟁했다.

벤츠의 목표가 최고의 안전과 내구성이라면, BMW의 목표는 모험과 즐거움이다. 벤츠는 시대를 앞서 가기보다는 자동차의 본질을 지키려 노력했고, BMW는 종종 실패하더라도 새로운 혁신을 선두했다(그래서 벤츠는 트럭이나 버스도 만들고, BMW는 오로지 타는 즐거움이 있는 승용차와 오토바이만 만든다).

물론 지금 두 회사는 서로의 장점을 흡수하며 여전히 자동차 세계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이건 말하자면 ‘백년전쟁’이다.

5라이카와 콘탁스의 전설적 전쟁

DSLR의 시대에 진정한 라이벌은 캐논과 니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카메라 역사 속 라이벌 브랜드를 이야기하려면 라이카와 콘탁스를 짚고 넘어가야만 한다.

1925년 오스카 바르낙이 20세기 최고의 광학 제품이라 일컬리는 라이카 35mm RF 카메라를 세상에 선보이자마자 경쟁사인 짜이스 이콘 역시 1932년 콘탁스라는 이름으로 RF 카메라를 내놓았다. 두 회사의 카메라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로버트 파카 같은 전설적인 작가들의 손에 들려 20세기 역사의 절반을 기록했다.

사실 인류의 역사가 사진이라는 매체로 저장된 건 모두 라이카와 콘탁스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랄프 로렌과 타미 힐피거의 프레피 전쟁

아메리칸 클래식의 두 대표 주자다. 폴로 셔츠와 치노 팬츠, 체크 패턴과 라이트한 컬러 등 주요 아이템도 스타일도 비슷비슷하다. 스포츠, 향수, 홈 퍼니싱 등 주력하고 있는 레이블도 겹치며, 무엇보다 프레피, 캐주얼이라는 전체적인 디자인 콘셉트가 같다.

판매나 시장 상황은 랄프 로렌이 다소 앞서 있지만, 2000년 이후 주춤거렸던 타미 힐피거의 사정도 하이엔드 레이블의 성과와 함께 차츰 나아지고 있다. 둘의 강점은 상품의 가격 폭이 10달러부터 500달러까지 정말 넓다는 것.

누구라도 랄프 로렌 혹은 타미 힐피거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얘기다. 넥타이 장사로 시작한 랄프 로렌과 청바지를 수선해 다시 팔며 의류업계에 들어온 타미 힐피거는 이렇게 미국 중산층의 옷장을 대표하는 두 얼굴이 되었다.

7아디다스와 푸마의 막장 드라마 전쟁

1. 아디다스 슈퍼스타2 라이트 가격미정.
2. 푸마 스웨이드 클래식 플러스 9만9천원.
형제가 함께 사업체를 경영한다면? 우리 모두 알다시피 이건 한국식 막장 드라마 소재로 아주 유용한 전제다. 돈 앞에 부모 없고, 사업 앞에 형제 없다. 아디다스와 푸마의 역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전 세계 스포츠용품 시장을 움켜쥐고 있는 아디다스와 푸마는 한 형제로부터 갈라져 나온 회사다. 형 루돌프 다슬러와 동생 아돌프 다슬러는 독일의 작은 마을에서 함께 스포츠용품 제조 업체를 경영하다가 1948년 각각 독립된 회사를 차렸다. 형 루돌프는 푸마를, 동생 아돌프는 아디다스를 만들었다.

그때부터 두 브랜드의 피 튀기고 땀 흘리는 전쟁이 시작됐다. 두 브랜드의 경쟁이 얼마나 격렬했는지는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의 에피소드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로마 올림픽에서 푸마는 독일 선수 아민 하리에게 100미터 결승전에서 푸마를 신고 뛰어달라고 돈을 지불했다.

그런데 돈을 받아 챙긴 아민 하리는 푸마를 신고 금메달을 딴 뒤 정작 시상대에는 아디다스를 신고 올랐다. 그러고는 아디다스 측에도 돈을 요구했다. 모두가 아디다스와 푸마의 경쟁을 밑천 삼아 떡고물이라도 받아먹으려 혈안이 된 시대였던 것이다.

물론 아디다스와 푸마가 형제의 경쟁심을 발판으로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것도 당연한 일일 테고 말이다. 모든 브랜드는 홀로 고고할 수 없다. 라이벌이 있어야 1위도 존재하는 법이다.


나이키 코르테즈 베이직 레더 6만9천원.
새로운 1인자, 나이키

아디다스와 푸마가 경쟁하는 동안, 미국에서는 새로운 강자가 떠오르고 있었다. 바로 나이키다. 육상 선수 출신 필 나이트는 독일 기업들에 대항하는 자국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

그는 품질은 좋으면서도 저렴한 운동화를 제작하는 길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고, 1972년에 임금이 싼 아시아 국가에 제조 공장을 차려 나이키를 설립했다. 필 나이트는 월드컵과 올림픽 시장에만 주목하던 아디다스나 푸마와는 달리, 인기 있는 스포츠 스타들을 광고에 활용하며 스포츠용품을 더 많은 대중에게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브랜드는 그렇게 탄생했다.

8스와치와 리치몬트의 럭셔리 전쟁

1980년대 스위스 시계 시장은 위기에 빠졌다. 일본과 미국의 카시오, 시티즌, 세이코, 타이멕스와 같은 값싸고 실용적인 브랜드가 몰려왔기 때문이다.

섬세하고 정밀한 기술로 완벽한 시계를 만들어낸다는 스위스의 시계 명가들도 가격으로 밀어붙이는 그 기세를 당해내진 못했다. 세르티나와 론진, 미도와 오메가 등 많은 브랜드가 파산 직전에 몰렸다.

하지만 티쏘, 해밀턴, 오메가 등을 소유한 스와치 그룹은 화사한 컬러와 심플한 디자인을 결합한 플라스틱 시계 스와치를 내놨다. 가볍고 실용적이며 무엇보다 예뻤다. 그리고 이 저렴이의 성공이 스와치 그룹을 살렸다.

스와치는 현재 리치몬트와 함께 세계 고급 시계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그룹이다. 해밀턴, 론진, 오메가, 라도 등 다수의 럭셔리 시계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IWC를 갖고 있는 리치몬트 그룹 역시 스위스 시계 산업의 대들보다.

스위스 북부의 작은 마을 샤프하우젠에서 만들어내는 IWC 시계는 하나에 1000만원도 넘는다. 정교한 공학 기술과 장인의 손맛으로 시계 명가 스위스의 위상을 지켜내고 있는 두 라이벌이다.

9보잉과 록히드마틴의 격렬한 공중전

세계의 하늘을 장악한 두 회사는 미국의 보잉과 록히드마틴이다. 1916년에 창립한 보잉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747 여객기 등을 히트시키며 민간 항공기 시장의 1인자가 됐다.

같은 해에 창립한 록히드마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P-34 라이트닝 전투기를 미군에 납품하면서 군용기 제조에 주력해왔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던 두 항공 브랜드의 전쟁은 보잉이 F-15를 개발한 맥도널드 더글라스사를 인수하는 등 군용기 제작에 뛰어들면서 시작됐다.

록히드마틴 역시 F-16을 개발한 제네럴 다이나믹스를 인수하면서 보잉에 맞섰다. 두 브랜드의 최대 격전은 2001년 미 국방부 첨단 차세대 전투기 사업이었다. 세기의 대결이라고 불린 이 사업에서 미 국방부는 록히드마틴의 손을 들어줬다.

물론 두 항공기 브랜드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록히드마틴은 “우리 제품이 우주를 뒤덮는 것이 꿈”이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있으니, 언젠가는 또 민간 항공기 제조에 뛰어들 것이다. 보잉 역시 또다시 전투기 사업에 뛰어들 것이다. 지구의 하늘은 두 브랜드의 전쟁과 함께 열리고 닫힐 운명이다.

10맥도날드와 버거킹의 그릴 위 전쟁

햄버거의 시초는 미국이 아니다. 미국 내 독일 이민자들은 다진 고기를 얇게 빚어 구워 먹던 함부르크 사람들의 레시피를 그대로 가져와 햄버거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햄버거에 이름을 붙여 팔기 시작한 것이 맥도날드 형제다.

이들은 단 30초 안에 15센트 가격으로 한 끼를 제공한다는 콘셉트로 손님을 끌어모았고, 맥도날드는 승승장구했다. 버거킹이 등장한 건 그로부터 14년 뒤이다. 마이애미에서 햄버거집을 운영하던 한 남자는 그릴에 구운 고기 햄버거 와퍼를 내놨다. 버거킹의 특허품이었다.

하지만 빨리, 싸게 햄버거를 제공하는 맥도날드를 따라잡진 못했다. 맥도날드에선 해피밀, 빅맥 등 히트 상품도 연이어 내놨다. 현재 전 세계 매장 수는 맥도날드가 3만2000개, 버거킹은 그의 3분의 1 수준인 1만1200개. 최근 버거킹은 매출 순위에서 2위 자리를 웬디즈에게 넘겨주기도 했다.

100% 순 고기, 프리미엄 버거. 버거킹이 매달리는 건 패스트푸드의 고급화다. 영국 매장에서는 심지어 100달러가 넘는 버거를 출시하기도 했다. 싸지 않은 패스트푸드다. 50년 넘게 이어지는 둘의 경쟁 관계는 이 난제 풀이법에 달렸다.

11인류가 존재하는 한 브랜드 전쟁은 계속된다
1859 -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출간.
1861 - 미국 남북전쟁 시작. 링컨이 노예해방 선언.
1864 - 네덜란드의 제라드 아드리안 하이네켄이 맥주 생산을 시작하다.
1873 - 레비 스트라우스가 리바이스 창립.
1874 - 덴마크의 제이콥 크리스찬 제이콥슨이 칼스버그 맥주 생산. 녹색 병 전쟁의 카운트다운 시작.
1886 - 카를 프리드리히 벤츠가 자동차를 발명. 아틀란타의 약사 존 스티스 팸버턴이 코카 콜라 발명.
1889 - 헨리 데이비드 리가 노동자들의 작업복으로 리(Lee)를 제조 시작.
1890 - 리바이스의 대표 모델 501 출시. 청바지 전쟁 카운트다운 시작.
1893 - 디젤 엔진 발명.
1894 - 벤츠가 역사상 첫 번째 상용차 출시. 약사 칼레브 데이비스 브레드햄이 펩시 콜라 발명.
1895 -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를 발명.
1903 -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발명.
1904 - 러일전쟁 발발.
1912 -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916 - 비행기 제조사 보잉과 록히드 마틴 창립.
1917 - 러시아 혁명, 소비에트 정권 탄생.

1919 - 인도에서 간디의 불복종 운동 시작.
1920 - 미국이 세계 최초로 라디오 방송 시작. 아돌프, 루돌프 다슬러 형제가 운동화를 만들기 시작.
1923 - 일본의 관동대지진 발생.
1924 - 다슬러 형제는 ‘다슬러 형제 신발 공장’을 차려 본격적인 운동화 사업을 시작.
1925 - 독일인 오스카 바르낙이 20세기 최고의 광학 제품이라 일컬리는 라이카 35mm RF 카메라를 세상에 선보임.
1926 - BMW(바이에른 모터 제작 회사)가 자 동차 제조를 시작하다.
1927 - 미국의 린드버그가 대서양 무착륙 횡단 비행에 성공.
1929 - 뉴욕 월가 주가 대폭락에 이어 경제공황 시작.
1930 - 오메가와 티쏘가 합병하면서 스와치 그룹의 두 전신 중 하나인 SSIH 창립.
1931 - 스와치 그룹의 또 하나의 전신인 ASUAG 창립.
1932 - 라이카의 경쟁사인 짜이즈 이콘이 콘탁스라는 이름으로 RF 카메라를 내놓음.
1934 - 히틀러가 독일 총통 자리에 오름.
1936 - 베를린 올림픽에서 육상 선수 제시 오언스가 다슬러 형제의 신발을 신고 4관왕이 됨.
1938 - 맥도날드 형제가 캘리포니아에 햄버거집 오픈.
1939 - 제2차 세계대전 발발.
1941 - 일본군이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 태평양 전쟁 발 발.

1945 - 독일과 일본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 막을 내림.
1948 - 운동화 사업권을 두고 싸우던 다슬러 형제가 결별을 선언.
1950 - 한국전쟁 발발.
1954 - 플로리다에서 한 남자가 버거킹이란 이름의 햄버거집 오픈.
1957 -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림. 버거킹이 그릴에 구운 햄버거 와퍼 출시.
1959 - 쿠바 혁명 성공.
1960 - 히피, 로큰롤 과 함께 리바이스가 젊음과 반항, 저항의 상징으로 떠오름. 제임스 딘을 모델로 한 광고가 화제가 됨.
1961 - 동독이 베를린 장벽을 설치.
1963 - 미국 케네디 대통령 암살.
1965 - 미국이 북베트남 폭격을 시작하면서 베트남전 발발.
1967 - 폴로 랄프 로렌 창립.
1968 -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프랑스에서 학생 운동과 함께 68혁명 시작.
1969 - 아폴로 11호가 최초로 달 표면에 착륙.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민간 항공기 보잉 747 제조 시작.
1970 - 일본과 중국이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 콜라 전쟁 시작. 맞소송과 공격성 광고 캠페인 시작.
1971 - 영국 롤스로이스가 경영 파탄으로 국유화됨.
1972 - 육상 선수 출신인 필 나이트가 나이키 설립. 절대 강자의 탄생으로 운동화 전쟁 종결.
1973 - 베트남전쟁, 미군 철수와 함께 종결.

1974 - 소련의 화성 6호 성공.
1976 - 미국 록히드마틴 항공사의 일본 정계 정치 헌금 스캔들 발생.
1978 - 영국에서 세계 최초의 시험관 아기 탄 생.
1980 - 버거킹이 업계 1위인 맥도날드를 겨냥한 공격성 광고를 시작. 소위 ‘버거 전쟁’ 발발.
1983 - 경영난이 심화되던 SSIH와 ASUAG가 합병해 스와치 그룹 창립.

1984 - 타미 힐피거 창립.
1985 - 소련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방사능 누출 사고. 나이키에서 에어 조단 출시.
1988 - 서울 올림픽 개최. 리치몬트 그룹 창립.
1989 - 베를린 장벽 무너짐. 루마니아 정권 붕괴. 중국 민주화 시위 확산. 천안문 사태 발발.
1990 - 동서독 통일. 영국과 프랑스 간 도버해협 터널 관 통.
1991 - 소비에트연방 해체. 걸프전쟁 발발.
1994 - 래퍼 스눕 도기 독이 타미 힐피거 셔츠를 입고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에 출연.
2001 - 미 국방부 첨단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서 록히드마틴이 보잉을 이김.
2007 - 애플이 첫 번째 아이폰을 출시.
2009 - 다슬러 형제의 고향인 헤르초게나우라흐에서 아디다스와 푸마의 화해 행사가 열림.

EDITOR김도훈, 정재혁
PHOTOGRAPHER이승수
제공GEEK
발행2013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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